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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질로 먹고 산 이 태조 선조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0-12-28
조회수
563
  • 바디질로 먹고 산 이 태조 선조 사진 1

전에 이 태조가 있었는데 그분의 조상되시는 분이 본래 전주에 계시다가 일이 잘못되어 거기에서 도망쳐 와 가지고 있다가 이분이 생계를 꾸려가지 못하겠으니까 옛날에 바디라고 있잖아? 바디질, 베 짜는 것 그게란 말이야. 하장면에서는 대마를 많이 해 가지고 그걸로 삼베로 짰거든. 삼베를 짜려면 바디질을 한단 말이야. 여기 와서 바디질로 장사를 했어. 그래 장사를 하는데 요 아래 저 서낭 밑에 월집이라고 있어. 옛날에는 길가에 주막이 없고 월집이라는 걸 지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기서 인제 밥을 먹고 자고 간단 말이야. 그래 그 분이 저 건너 저에서 밥을 해다가 거기에 놓고는 사람들이 낭구를 해가지고 오면 밥값으로 받았어. 옛날엔 엽전을 쓰니까 밥을 이렇게 놓고는 이게는 한 푼짜리, 이게는 두 푼짜리 이랬단 말이야. 한 푼짜리 음식이면 낭그를 한 낱을 세워놓고, 더 좋은 음식이라 두푼이면 두낱은 세워놓고 이러며는 사람들이 이걸 먹고는 돈을 내고 간단 말이야. 그래 그 양반이 그 동네에 와서 바디를 매고 살았어.

이 동네 이름이 원래는 정동이라 했어. 왜 정동이냐면 정씨라는 사람이 전란이 나니까 이 골에 피란을 왔어. 그래 정가박골이라 불렀는데 그래 정동이 된 거란 말이야. 거기다 단군영정을 모셔 놓았는데 거기가 정가박골이야. 거기 정씨 몇 집이 살면서 화전을 했어. 그래 정동이라 했지. 그곳에 이태조 조상이 와서 살았단 말이야. 살면서 바디를 해서 먹고 살다가 딴 곳으로 갔어. 그래 그분이 바디를 했다고 해서 그 다음부터 여기를 바디라 불렀어. 여기서 떠난 이태조 조상은 여기가 너무 번잡하다고 활기릉 있는 곳에 가서 살다가 상사가 나니까 상을 치루고 함흥으로 가서 산 거지.

그런데 일본 사람이 와서 바디를 바 소()자로 바꾸고 길가에 있다 해서 길 도() 자를 써서 소도(所道)라고 한 게야. 태백산에 가려면 이 곳으로 와서 올라갔거든. 거기 가면 망경사란 절이 있고 문수봉이라고 있어. 문수봉이 있는데 사람 모양으로 깎아놓은 돌이 있어. 큰 돌멩이를 깎아 거기다 집을 지으려고 했는데, 그날 밤에 자고 일어나보니 그 돌이 없어졌어. 그래 찾아보니 지금 저 건너 법당처가 있는데 거기 와 놓여 있단 말이야. 그러니 모두가 아하, 저 건너는 제 자리가 아니라서 이렇게 옮겨 왔나 보다.” 이랬는데 지금보면 자세가 좀 삐딱해. 원체 큰 돌멩이니 바로 세울 수 있나? 그게 그렇게 된 거라고. 그곳은 굿당이 되었어. 사람들이 강원도 사람들도 오고 경상도 사랃믈도 와서 매일 풍물을 두드리고 굿을 했거든. 부정굿을 했어.

 

조사일자: 1997. 4. 24.

조 사 자: 이영의, 김종연, 김진영

제 보 자: 심영수(80, , 소도동)


출처: 태백시지(1998년 9월 30일 발행) p.480~495

발행: 태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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