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과 지명 이야기
너는 도대체 정체가 뭐니? 몸은 왜 그렇게 징그럽니? 장어처럼 생겼는데 잘 들여다보면 장어는 아니고 갈치인 것 같은데 또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도 아니고. 아이고, 꿈에 볼까 무섭다. 우린 이렇게 은빛으로 빛나는데 넌 그 색깔이 뭐니? 갈치가 그렇게 말했다. 이어 장어는, 나도 징그럽지만 너는 나보다 어떻게 더 징그러울 수가 있니? 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넙치와 가자미도, 그 밖의 고기들도 나를 무시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장어와 사촌쯤 되는 줄 알고 지내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실 본 게 많지 않은 내가 보기에도 장어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몸에 비늘무늬가 크고 색깔도 바닷속 고기들하고는 너무 달랐다. 내겐 엄마한테 있는 두 쌍의 다리도 발톱도 없었고 비늘도 생기기 전이었는데도 물고기들은 나를 징그럽다고 했다. 나는 내 몸이 지금보다 더 자라면 엄마의 몸처럼 바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래도 확인은 하고 싶어 나중에 자라면 내 몸도 엄마처럼 되냐고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엄마가 불편해 할까봐 아무 소리 않았지만 엄마처럼 되면 안 살고 싶어질 것 같았다. 엄마의 몸을 볼 때마다 아들인 내가 피하고 싶을 때가 많았으니 남들은 오죽했을까 싶다.
나는 그제야 엄마가 심해의 깊은 굴속에서 안 나오고 웅크려 있는 이유를 알게 됐다. 엄마는 두 쌍의 다리가 있고 몸에는 얼쑹덜쑹 무늬도 있어 누군가 보기만 해도 놀라고 두려워 그 자리에서 꼼짝을 못했을 것이다. 흉측하게 생겼기 때문에 우리는 잡혀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됐다. 우리를 잡아먹을 수 있는 건 상어나 고래밖에 없었는데 그 친구들도 우리를 보면 피하는 눈치였다.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그걸 잠시 잊고 있었다. 바닷속은 끊임없이 서로를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전쟁터였다. 미역의 줄기를 잘라먹고 살던 전복을 게가 순식간에 앞다리로 붙잡아 살을 발라먹었다. 문어가 나타나 여러 개의 발로 게를 낚아채면 그 게의 다리는 무용지물이 됐다. 그 문어가 사냥에 열을 내어 또다른 게를 붙잡으려고 노릴 때 어디에선가 바다표범이 나타나 단숨에 씹어 삼켰다. 순식간에 그런 일이 일어났고 잠시 후면 언제 그랬냐 싶게 조용해지는 게 바다였다.
장어나 갈치같이 몸집이 나와 비슷한 고기들만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 이젠 아주 작은 아이들까지도 덩달아 나를 업신여기기 시작했다. 너 같은 것하고 이 바다는 안 어울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너 온 곳으로 가버려. 떼를 지어 다니는 고기들은 바쁜 일도 없으면서 나를 보면 속도를 더 높여 피해갔고, 조개들도 뚜껑을 닫아버렸다. 해초들도 부산히 몸을 흔들어 내가 들어가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예전엔 곧잘 친구하던 고기들도 이제는 슬슬 피하고, 내 몸집이 조금씩 자라나면서 바닷속 모든 것들이 나를 피하고 아무도 말을 안 걸어주었다. 따돌림을 당하는 날이 많아지고 나를 피하는 친구들이 많아져갈수록 없어져 버리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도대체 내가 뭐기에 그렇게 무시를 당해야 하는지, 그들이 왜 나를 피하는지 나 같은 걸 낳은 엄마한테 따지고 싶어졌다. 무시당한 이야기를 고해 바쳐서 엄마 입에서, 나중에 굴에서 나가 다 잡아먹어주겠다, 는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 엄마가 그렇게 해준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지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엄마한테 고기들을 혼내주라는 얘기를 하면, 용이 되려면 그런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면 안 된다, 하고 나를 야단칠 게 뻔했다. 바닷속 모든 것들이 나를 업신여기는 도가 지나쳐갈수록 나는 그동안 금기였던, 내 아빠가 누군지에 대해 엄마한테 꼭 물어보리라 벼르게 됐다. 모든 걸 참아야 한다, 참는 것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엄마는 눈만 끔벅거리면서 그 큰 몸을 미동도 않고 수양에 열중할 것이다. 이담에 네가 더 크면 용이 뭔지, 아빠가 누군지도 알려줄게. 그 얘기를 들을 게 뻔했다. 답을 알기에 매일매일 내 마음 속에서는 내 정체가 뭘까 하는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엄마는 최근 들어 불평불만이 많아진 내게, 남들한테 징그럽게 보이거나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나중에 용이 안 된다고, 의젓해지라고 늠름해지라고 자주 주의를 주었다. 그럴 때마다 용이 뭐냐고 물으면 나중에, 나중에 얘기해 줄게 하고 엄마는 대답을 피했다. 그러면 나는 굴 밖의 모든 생명체가 나를 무시하는데도 하릴없이 바깥을 쏘다니며 구경을 하다 시무룩한 상태로 돌아오곤 했다. 하루가 지나고 하루가 또 지나고, 인간의 나이로 치면 열 살이 좀 넘었을 때일까. 어느 날 멀리도 안 나가고 굴 밖에서 시무룩하게 쭈그리고 있었는데,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얘, 검룡아. 그동안 네가 궁금했던 것을 말해줄 시간이 온 것 같다. 실은 우리는 이무기란다. 우리들을 보고 사람들은 이무기, 이슴이라고도 부르고 한자로는 이룡(螭龍), 검룡(儉龍)이라고 한단다. 그 말을 듣는데 왠지 내가 더 부끄러워졌다. 용이라는 어감은 듣자마자 멋있었는데 이무기는 듣는 순간 뭔가 부족하고 징그러워 보였다. 실은 이 엄마는, 태백의 용늪에서 용이 되려고 하다 그만 실패한 이무기란다.
이무기는 늪이나 못, 소(沼)에서 수양을 하면서 천 년을 다 채우면 용이 된단다. 구렁이 중에서도 유독 큰 구렁이를 이무기라고 하지만, 엄마도 아빠도 너도 오래 묵은 구렁이는 아니란다. 그런데 나는 그만 하루를 다 못 채우고 사람에게 발각이 되어 용도 아닌 이상한 모습이 돼, 태어나 자란 곳을 떠나 여기까지 흘러왔다. 그곳에서는 도무지 창피하고 억울해서 살 수가 없었단다. 다른 이무기들 보기도 창피하고 하다못해 냇물의 올챙이, 피라미 보기도 민망하더구나. 내 꼬락서니가 무당개구리만도 못해 보였단다. 그래서 물길을 타고 끊임없이 내려와 이곳 서해까지 오지 않았겠니? 바다에서는 먹을 거라도 쉽게 얻을 수 있으니까. 먹고 사는 것도 문제였지만, 앞으로 태어날 너를 그곳에서 키울 수는 없었다. 나 때문에 너도 더 무시를 당할 것 같아서.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천년을 수양해서 용이 되는 게 내가 여기 온 목적이었단다. 다행히 네가 잘 태어났고, 바다 속은 넓고 넓어서 자유롭게 이동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또 바다 깊숙한 곳에 지금 우리가 사는 멋진 은신처도 있으니 엄마는 더 바랄 게 없었다. 너도 좀 자라 다른 굴로 들어가 수양을 하면 우리 모두 용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데 용은 어떻게 생겼어요? 나는 이무기인 엄마가 흉측하게 보이니까, 이무기가 수양을 해서 바뀐 용은 너무 멋지게 생겼을 것 같아 바로 그렇게 물어 봤다. 검룡아, 너는 그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물속에서 살아야 하지만, 용이 되면 물속을 드나드는 것은 물론 어디든 이르지 못하는 데가 없단다. 용은 우리하고는 다르게 살아가는 존재란다.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바다가 아무리 넓다한들 하늘만 하겠냐. 우리는 물이 없으면 죽지만 용은 물이 없어도 사니까 온 사방을 다 돌아다닌다. 우리는 사람들에게도 다른 짐승들한테도 무시를 당하지만 용은 공경의 대상이 된단다. 사람은 용을 떠받들지만 이무기는 보면 죽이려 들지. 그러니까 우리는 용이 돼야 한다. 용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용이 될 때까지 잠잠히 기다려야 한단다. 내 친구 이무기는, 걔는 용정이라는 우물에서 살았는데, 용이 안 됐다고 때때마다 사람들한테 나타나 해코지를 하고 못 살게 구니, 누가 이무기를 좋아하겠니? 우리는 못된 짓을 하는 대신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아야 용이 된다. 이 엄마는 말이다. 태어나서 용이 승천하는 걸 딱 한 번 봤단다. 태백의 용늪에 있을 때였다. 여름날이었다. 모든 시간을 다 참아내고 용이 돼서 올라간 이무기를 봤단다. 그 이무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가는데, 내 평생 그런 장관은 더 없었다. 안개가 가득 낀 새벽,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 우리보다 몸집이 적어도 다섯 배에서 열 배는 더 커진 그 이무기가 몸을 비틀면서 소(沼)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니? 오랜 시간을 견딘 만큼 그 이무기한테서는 무서운 힘이 느껴졌단다. 젊었을 적, 그 이무기와 엄마는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용이 되기 위해선 같이 붙어있을 수 없었지. 헤어진 이후로 그 이무기는 비교도 안 되게 몸이 커졌더구나. 엄마 몸은 누르스름하지만 그 이무기는 검푸르더구나. 거기는 엄마가 있던 늪에서 얼마 안 떨어진 소였는데, 그 맑은 물속에서 나오는 순간 꼬리부터 허물이 벗겨지면서 몸의 색깔이 더 검푸르게 바뀌고 광택이 흘렀다. 이어 온몸에는 갑옷, 너가 알기 쉽게 말하자면, 나중에 민물에서 잉어를 보게 될 텐데, 잉어 같은 비늘이 온몸을 가득 덮었더구나.
그 이무기의 이마에서 뿔이 솟고 눈이 커지더구나. 그리고 발톱이 점점 커져서 독수리 같은 발톱으로 바뀌고 그 발톱의 부리도 엄청나게 커져서 사람 열 명도 움켜쥘 수 있을 것 같더구나. 발톱만 봐도 겁이 나 오금이 저렸지. 그때 그 이무기의 입에 여의주가 물려 있는 게 보이더구나. 여의주를 물었으니 이제 이무기가 아닌 것이지, 용이지.
여의주가 뭐냐고? 여의주는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며 병을 치료해주는 신비의 구슬이란다. 여의주가 있으면 악도 없앨 수 있고, 재난도 막을 수 있단다. 그 이무기는 수양을 제대로 마쳤기 때문에 몸 안에서 여의주가 생겼던 것이다. 그건 최선을 다해 수양을 한 스님의 몸에 사리가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지. 여의주를 문 용에게 어서 올라오라는 듯 하늘이 열리는 것 아니겠니? 엄마는 그때 그 용의 입 속에 든 여의주가 발하는 빛 때문에 눈이 부셔 똑바로 쳐다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다른 곳에서 머리를 내민 이무기들도 다 입을 못 다물었지. 그 용이 자랑하듯 몸을 움직이면서 날기 시작했다. 그 여의주를 물었으니 그 용이 뭐가 아쉬운 게 있겠니? 그 용은 아주 높이높이 날아서 우리들이 볼 수 없는 멋 곳으로 사라졌다. 내 생애 그렇게 멋진 장면은 처음이었단다. 그 장면을 기억하면 나도 못 참을 일이 없고, 너 역시 모든 걸 참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 아래에 있는 것들 중에 용을 이길 수 있는 금수(禽獸)가 있겠니? 호랑이와 사자가 아무리 강한들 용만 하겠느냐.
그 이무기가 물에서 나와 승천하는 시간은 너무 짧고 빨랐다. 사람들은 그 장면을 못 봤지만, 우리 이무기들에게는 찌릿찌릿 신호가 다 오기 때문에 저마다 못에서, 늪에서, 소에서 머리를 내밀고 그걸 올려다봤단다. 그 용은 멀리에 있는 우리 이무기들한테 인사를 할 시간이 없었지. 나는 아주 짧은 시간 그 용과 눈이 마주쳤단다.
그게 마지막이다. 그리고 용은 태백산 꼭대기를 빙빙 돌고는 우리 눈에서 사라졌다.
용이 몸을 뒤틀면서 하늘로 올라가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을 때가 있다. 그 순간에 내가 너를 잉태하게 된 거란다. 나는 그 놀라운 광경을 보면서 속으로 다짐했단다.
곧 나도 그렇게 되리라고. 나중에 내 몸에서 태어나는 새끼는 꼭 용으로 만들겠다고.
그런데 그 용이 누구인 줄 알겠니?
용이 승천하는 장면을 상상하느라 넋이 빠진 내게 엄마가 그렇게 물었다. 이담에 내가 용이 되어 하늘이라는 곳에서 멋지게 비행할 것을 상상하느라 나는 그 용이 된 이무기가 누군지에 대해선 생각을 안 했다. 혹시, 아빠? 나는 그제야 엄마가 그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 감을 잡았다.
녀석, 이만큼 얘기를 해 줬으면 바로 눈치를 챘어야지. 그 용이 바로 네 아빠란다.
물론 네 아빠가 엄마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으니 당연히 먼저 용이 되는 게 이치긴 했지. 그 후 이 엄마도 똑같이 돼보려고 정말 많은 시간 수양을 했다. 백년이 가고, 이백년이 지나가고 이제 엄마도 용이 되려면 하루가 남았을 때였다. 수양 중 숫자를 세는 게 옳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날짜를 계산해 봤단다. 그런데 마지막 며칠을 앞두고 그만 숫자를 잘못 헤아려 나갈 날짜를 착각한 것이지. 어마어마한 홍수가 나느라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둥이 치는 걸 내가 나가야 하는 때로 잘못 알았던 것이지. 드디어, 때가 됐구나, 하고 몸을 늪에서 빼냈단다. 그런데 뭔가 조짐이 안 좋더구나. 용이 올라갈 때의 그 분위기가 아니었어. 무척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그만 논의 물을 보러온 할아버지한테 발견이 된 거지. 아니, 저, 저건 이무기 아니야? 이무기다! 세상에, 이무기가 여기서 살고 있었구나! 노인이 나를 보고 소리를 질렀지. 나는 그 순간 하늘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푹 고꾸라졌다. 그 노인이 마을로 들어가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걸 알려주면 사람들은 쫓아와서 나를 죽이려들 게 분명했다. 어떡하겠니? 내 정체를 들켜버렸으니 그 자리를 피하는 수밖에.
홍수로 불어난 물에 무작정 몸을 실어버렸다.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이었지. 바윗돌이 막 굴러가고 나무가 뽑혀 떠내려가는 그 물에 엄마는 몸을 맡겼다. 그런데 등쪽에 조금 상처를 입은 것밖에는 무사하게 바다까지 온 거 아니겠니? 엄마는, 여태까지 한 번도 안 보여준 상처를 내 눈앞에 들이댔다. 내가 그 아문 상처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엄마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누구보다 참을성 많았던 내가, 어떻게 그 순간 실수를 했는지, 어떻게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하늘과 땅을 원망하고 산천초목을 원망했단다. 그 망할 놈의 영감탱이만 아니었다면 바로 용이 됐을 텐데 말이다. 그 영감을 죽이지 않고 살려둔 게 천추의 한이다. 그러나 내가 용이 안 됐다고 그 영감을 해코지했던들 뭐가 달라졌겠니? 지금은 다 옛날 얘기일 뿐이다. 다시 도전을 하면 되는 것이고, 너 또한 자라서 용이 되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니겠니? 엄마는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 해도 좋다.
내가 설사 용이 안 된다고 해도 너가 용이 될 거니까 그거 믿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다시 천년을 더 살아내면 용이 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묻자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르지. 그건 하늘의 뜻에 달려있는 것이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렇게 되길 바랄 뿐이다. 천년을 하루같이 성실히 살아내면 될 수 있겠지. 그리고 남들이 아니라도 내가 모진 세월을 이겨냈다면 그것만으로도 용이 된 거 아니겠니?
나는 그 말이 귀에 잘 안 들어왔다. 엄마가 용이 안 된 이야기보다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아빠를 그려보느라. 내 몸이 용이 되는 상상을 하니까 바닷속에서 지루한 날들을 보내는 것은 더 이상 흥미가 없어졌다. 하루빨리 바다를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검룡아, 이담에 좀 더 자라면 태백으로 가서 최고 좋은 물의 근원을 찾아라. 우선 그걸 찾는 것부터가 용이 되는 길이다. 이 엄마는 대덕산 어딘가, 금대봉 어딘가에 아주 물이 차고 깨끗한 소가 숨어있다고 들었다. 그 샘을 찾기 위해 이무기들이 애를 썼지. 그러다가 못 찾고 늪이나 못, 우물 같은 데를 제각각 찾아 들어갔단다. 엄마도 거길 찾다가 못 찾고 용늪으로 들어가 버린 거였지. 나중에 태백에 가면 용늪, 용소, 용연동굴, 용정 이런 데가 있을 것이다. 그게 다 이무기들이 차지하려고 싸우던 곳이지. 저마다 깊은 못과 늪, 소를 차지하기 위해 애를 썼지. 몸집이 크고 성격이 못된 이무기는 싸워서 아주 큰 소나 못을 차지하고, 작은 이무기는 아주 형편없는 늪이나 소에서 살 수밖에 없었지. 어떤 이무기들은 의기투합해서 큰놈 하나를 몰아내고는, 다시 또 싸워서 살아남은 놈이 좋은 곳을 차지했지. 싸우고 죽는 일이 무수히 많았단다. 그건 인간이나 이무기나 똑같은 것 같다. 그러지 않는 것이 이무기에서 용이 되는 자격 중 하나라는 것을 다들 몰랐으니 그랬을 것이다. 몸이 흉측하면 마음이라도 곱게 써야 할 텐데. 생긴 대로 놀았으니 어찌 사람들한테 응원을
받고 숭앙을 받았겠니? 너는 남들이 다 갈 만한 데는 가지 말고, 꼭 내가 말한 그곳을 찾아가라. 그곳 차가운 물속에서 1000년을 참아라. 찬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그대로 있어야 한다. 작은 몸이라도 용이 되면 엄청 크게 변하니, 수양 중에는 아무것도 먹어선 안 된다. 태백의 그 소에 들어있는 물은 몸을 담그고 있는 것만으로도 수양이 된다고 들었다.
그러니 너는 얌전히 들어앉아서 그 물만 마시고 있어라. 그렇게 하면 너에게도 여의주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비바람이 몰려오면서 우레 같은 소리가 날 것이다. 그때에서야, 그러니까 네 몸에 여의주가 생겨서 그게 입으로 나올 때까지 얌전히 있다가 하늘이 번쩍 하고 빛나는 시간에 나와서 높이높이 올라가라.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해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우리가 있는 것 아니겠니?
사람들은 백년도 못 살면서 아등바등 애를 쓰지. 다들 부귀영화를 탐하지만 그것들은 영원하지 못하지. 어차피 다 내려놓을 것들인데. 남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면서 살면 얼마나 이름도 나고 주위 사람들한테 칭송을 받겠니? 그런데 다들 헛된 것에 기운을 쏟느라 가치 있는 일은 거의 못 하고 죽어나가지. 그래서 인간들이 불쌍하다는 것이다. 그걸 아는 우리만이라도 제대로 용이 되어 인간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 하늘에 고해서 가뭄도 피하게 해주고 비도 그치게 해주고 말이지. 때론 못된 짓 하는 인간에게 겁도 주고 하면서 말이지. 용이 안 되면 그런 일은 꿈도 못 꾸지.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절대 사람들 눈에 안 띄어야 하고, 사람들한테 미움 받을 짓을 하면 안 된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부주의로 용이 되기도 전에 죽임을 당한 이무기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을 꼭 명심해다오.
그럼 저도 그곳에 가서 잘만 참으면 용이 될 수 있는 거예요?
물론 그렇지. 그러나 쉽지는 않단다. 하고 싶은 거 다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시간을 가볍게 여기고 마음의 절제를 가볍게 여기면 용이 될 수 없단다.
엄마의 얘기를 듣고 난 후에는, 머릿속에 온통 하늘을 유유히 나는 아빠의 모습과, 태백에 있다는 그 전설의 샘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어차피 엄마한테 이야기를 들은 이상 이제 바다에서 조용히 산다고 용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바다는 나하고 맞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빨리 바다를 떠나 그곳으로 가서 용이 될 수 있는지 그 궁리만 했다. 그리고 내게서도 다리와 발톱이 빨리 나오길 바랐다. 얼른 내 엄마와 아빠의 고향으로 가서 용이 되어보자, 나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런 꿈에 부풀어 있다 보니 기껏해야 한 길밖에 못 자라는 장어나 갈치 따위가 건드렸다고 발끈하게 되지는 않았다. 그 친구들은 갈치로 살고 장어로 사는 게 전부지만 나는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우리 같이 그쪽으로 가서 용이 되는 게 어때요?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니? 그러나 엄마는 이미 몸집이 커져서 사람들 눈에 띄기 때문에 갈 수가 없단다. 그곳에 가서 용이 되는 게 네 꿈이라면, 너 홀로 나가서 네 꿈을 펼쳐보려무나. 지금은 헤어져도 언젠가 나도 너도 모두 용이 돼 있을 것이다.
엄마는 이곳에서 새로운 천년을 잘 참으면서 반드시 용이 될 것이니 그리 알고 너는 떠나도록 해라.
천년 세월이 까마득하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용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고 있으니 이제 두려운 것이 없어졌다. 나는 용이 될 몸이었으니까. 용이 되면 고래도 상어도 나를 대적할 수 없겠지?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엄마 이야기 속 아빠 용이 마치 나인 것처럼 생각하고 굴 밖으로 나갔다. 이제 고기들을 만나도 겁나지 않았다. 아마 지금 내가 용이라면 다들 겁을 내고 머리를 조아렸겠지? 그 생각을 하니 편하게, 기분 좋게 바닷속에서 지낼 수 있었다. 예전에는 쭈뼛거리면서 남의 눈치나 봤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용이 되어 돌아다닐 하늘을 생각하니 온몸에서 끝없이 기운이 났다. 예전엔 나를 무시하는 고기들을 만나면 어떻게 얘들을 혼내줄 수 있을까 그 궁리만 했지만, 이제는 그런 건 시들했다. 용이 되면 그런 것들하고는 아예 상종할 필요도 없는데 사소한 데 목숨을 거는 건 미래의 용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용이 되기 전까지는 용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지만 억지로 참았다. 대신 수면까지 올라와 하늘을 보다 수심 깊숙한 우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가슴이 부풀어 더 멀리 집을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오다 보니 귀가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엄마, 저 이제 태백이란 데로 가겠어요.
어느 날 저녁 나는 엄마한테 집을 떠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은 떠나겠지만 이렇게 빨리 가야 되겠니? 네 몸에 다리와 발톱이라도 나왔을 때 가면 더 좋겠는데.
엄마는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나는 확고했다.
정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무작정 간다고 그곳으로 갈 수 있겠니? 무엇보다 태백 쪽의 물맛을 아는 게 중요하단다. 연어나 은어도 그렇게 물맛을 알아야 고향까지 간단다. 바닷물은 짜서 잘 모르겠지만 민물에는 온갖 물들이 모여 있단다.
물에는 그 물이 시작된 각 샘물의 맛이 숨어 있는 것이지. 그 샘의 맛도 모르면서 어떻게 태백까지 갈 수 있겠니? 무작정 떠났다가는 가는 도중에 방향을 잃고 말 텐데. 거길 아무 준비도 없이 가겠다고?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나를 데리고 굴 밖으로 나왔다. 물고기들이 사색이 돼서 한 치도 앞으로 못 움직였다. 엄마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였다. 우리는 한참 후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김포 포구까지 갔다. 짠물의 농도가 약해지면서 온갖 물맛이 다 느껴지는 곳이었다. 엄마는 수십, 수백 가지 물맛을 보라고 했다. 나는 짠물 속에만 있다가 민물을 맛보니까 정신이 몽롱해졌다. 다 그 물이 그 물인 것 같으면서도 미세하게는 다 달랐다. 그렇다고 어떤 물이 태백의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엄마는, 것 봐라, 아무것도 모르면서 성급하기는, 하고 그날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우리는 그곳으로 갔다. 바닷물과 섞이고 온갖 실개천과 냇물, 강물과 섞이면서 이 맛도 저 맛도 아니게 된 태백의 물맛을 오롯이 찾아내는 실험을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몸의 피가 건강해지는 맛이 느껴지는 물 한 줄기를 찾았다. 그래 바로 그 맛이다. 한강처럼 폭이 아주 넓은 강에는, 모든 물의 맛이 섞여 있어서 웬만하면 가려낼 수가 없다고 했지만, 나는 예전에 먹었던 엄마의 젖 맛을 기억해냈다. 내가 먹은 젖에는 엄마의 몸을 이루고 있는 태백의 물도 섞여 있었을 테니까 그 맛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엄마는 물맛을 찾아낸 나를 기특해했다. 매일 와서 이 물맛을 잘 기억해내고 어떤 물과 섞여도 그 맛을 기억해 낼 수 있다면 그곳을 찾아가도 된다.
물맛을 찾아내니 나 홀로 태백까지 가는 게 더 이상 걱정이 되지 않았다. 중국의 황하에서 흘러드는 누런 진흙물의 맛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았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한강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물이 줄어들면서 마지막에는 물이 시작된 곳이 나타날 거였다. 매일매일 그 물맛을 구별해 내어서 부쩍 자신감이 생긴 날. 나는 엄마한테 길을 떠나겠다고 했다. 엄마와 이별을 하는 것은 슬펐지만, 용이 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며칠 후,
나는 용이 되어 하늘에서 만나자고 엄마와 약속을 하고 굴속에서 나왔다. 엄마가 녹색의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배웅했다. 엄마의 눈을 오래 들여다보면 못 떠날 것 같아 냉정하게 뒤돌아서서 한강 쪽으로 향했다. 내 등 뒤로 엄마가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게 느껴졌지만, 결코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내 눈에서도 눈물이 나왔다.
나는 엄마와 같이 오가던 물길을 통해 김포를 지나 한강으로 접어들었다. 바닷물과 민물의 경계 지역까지만 왔다가 완전히 바닷물을 벗어나니 몸이 급속도로 약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물이 많다 보니 토할 것 같은 때도 자주 찾아왔다. 그래도 꾹 참고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강바닥에 몸을 붙이고 이동했다. 내 몸이 아직 크지 않다 보니, 백 년은 묵은 듯한 잉어나 메기가 나타나 시비를 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몸이 나만큼은 안 됐기에 물리치고 밤낮 구별 없이 움직였다. 특히 밤에는 밤고기를 뜨는 사람들 눈에 안 띄기 위해 최대한 바닥 깊숙이 움직여야 했다. 그래도 밤은 훨씬 안전했다. 배들도 별로 지나다니지 않아 고요한 가운데,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고 적당한 속도로 움직이면 됐다. 정 몸이 힘들면 잠깐 쉬었는데 그때는 메기나 쏘가리, 잉어 같은 고기들이 붙잡고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다. 입담이 좋은 터줏대감 격의 큰 고기들이 그동안 주워들었던 인간의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놓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거기에 살아온 만큼 아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 동네의 역사와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내 수양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갈 길을 재촉하지 않고 다 들어주었다. 간혹 자잘한 물고기들이 저희들을 많이 잡아먹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하면서 마을의 이야기를 전해 줄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땐 배가 고파도 참고 그 아이들을 잡아먹지 않았다. 나 살아보겠다고, 태백까지 가려면 기운을 얻어야겠다고 어린 고기들을 잡아먹어야 하는 내 처지도 딱했다.
물고기들이 전해준 사람들 이야기의 공통점은 인간 세상엔 평화가 없다는 거였다.
욕심 때문에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일이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났다. 서해에 있을 때는 알려고도 안 했지만, 강을 따라 쭉 거슬러 올라오다 보니 내가 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됐다. 사람들은 가뭄 때문에 농사를 못 짓는다고 울먹이고 하늘을 향해 원망을 할 때도 있었고, 갑자기 홍수가 지면서 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논밭을 잃고 가족을 잃었다고 대성통곡을 할 때도 있었다. 가뭄이 든 동네는 ‘용’자가 붙은 늪이나 소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 내가 지금 용이라면 가뭄이 든 곳에서는 비를 내릴 구름을 몰고 올 수 있을 텐데, 홍수가 난 곳에서는 더 이상 비가 안 내리게 비구름을 멈추고 날이 개게 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나는 그런 힘이라고는 없는 조무래기 이무기였다. 그게 슬펐다. 인간세상의 일을 구경하다 보니, 사람이 사는 게 힘이 든 것처럼 내가 용이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어느 날은 내가 어딜 가려고 길을 떠났는지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었다. 그러면 태백의 물맛이 헷갈려졌다. 다시 기운을 모으고 뜻을 집중해서 그 물맛을 찾아내야만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양수리에서는 물맛이 헷갈려서 북한강 쪽으로 갈 뻔하기도 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갈라지는 그 지점에서 몸서리를 쳤다. 지체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다시 채찍질을 해서 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경기도 여주를 거쳐 충주와 단양이라는 곳을 지났다. 어느 강 옆 마을을 지나도 사람 사는 이야기는 거의 다 비슷했다.
깊은 물속을 움직일 때는 몸이 안 보일 테니까 헤엄치기가 쉬웠지만 물이 얕은 데서는 함부로 몸을 드러내면 안 되니까 조심해야 했다. 낮에 피라미나 꺽지를 잡으러 나온 아이들, 밤에 메기를 잡으러 나온 어른들 눈에 띄어 좋을 것은 없었다. 아이들은 내 몸을 보고 경기를 일으키겠지만, 가끔 어떤 사내 녀석들은 나를 잡겠다고 설쳐댔으니 잘 피해야 했다. 간혹 어른들 중에도 천지분간 못하는 이가 집에 뭔 액운이 닥칠지도 모르고 나를 산 채로 잡겠다고 덤벼들기도 했다. 이런 저런 위험을 안 겪으려면 물속을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소에 들어가 납작 엎드렸다가 인적이 없을 때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움직이다가 낚시꾼에게 낚일 뻔한 적도 있었다.
낚시꾼만 위험한 건 아니었다. 물속에는 갖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충주를 지날 때였나. 홍수로 불어난 물속에서 정신 못 차리고 급히 몸을 움직이다가 바위에 머리와 가슴패기를 부딪혀 엄청 고생을 했다. 또 진흙물 때문에 굴러가는 바위에 깔려 몸이 두 동강이 날 뻔했다. 지금 내 옆구리에 조금 남아있는 흉터는 그때 생긴 것이다. 그런 일만 있어도 끔찍한데 더 끔직한 건 이무기들이 떼로 공격해오거나 시비를 걸 때였다. 이무기 몇 마리가 떼로 몰려들어 내 목을 조르고 물어뜯으려 했다. 그때는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 싶었다. 내 처지를 비관할 때마다 엄마가 생각났다. 서해에서 같이 있을 때는 내가 무시하고 업신여겼던 엄마였는데, 언제나 그리운 엄마가 됐다. 내가 즐겁고 신날 땐 생각을 못하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엄마 생각을 했다. 사람도 그와 같은 것 같았다. 남들 눈으로 징그럽게 봤던 우리 엄마가 그리워졌다. 엄마를 무시하던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나마 내가 거슬러 올라가는 그 물길이 오래전 엄마가 내려온 길이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자 몸으로 그 엄청난 진흙물 속을 헤매면서 바다까지 간 엄마가 대단해 보였다. 용이 되기 전까지는 엄마를 다시 볼 수 없는 게 가슴이 저렸다. 나는 엄마가 용이 될 때까지 끝까지 응원하리라 마음을 먹었고, 엄마 역시 내가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을 응원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다시 움직일 힘이 솟아났다.
빨리 태백에 가 닿고 싶었지만 오는 도중에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지체하다 보니, 금방 갈 수 있을 것 같은 그곳이 멀게만 느껴졌다. 가끔은 여기 눌러앉아 볼까 싶은 멋진 소나 늪이 나타날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빈 곳이 아니었다. 잠깐 앉아있노라면 주인이라면서 이무기가 나타나 나를 쫓아냈다. 그 이후에도 쭉, 물이 좀 깊다 싶은 곳에는 어김없이 이무기가 들어 있거나 이무기가 되고 싶은 메기나 쏘가리가 자리를 차지하고 텃세를 부렸다. 그런 이무기나 고기들을 만나면, 다들 뭔가 되고 싶어 애를 쓰는구나 싶은 게 처량했다. 그들은 그 동네에서 태어나 동네 밖을 떠나본 적이 없기에 나한테서 바다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고, 나는 그 말을 풀어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나의 최종 목적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혹 그 얘기를 듣고 다른 이무기가 태백의 그 샘을 찾아가면 안 되니까.
힘을 내서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영월에 이르렀고, 박차를 가해 동강을 지나 부지런히 움직이니 정선의 조양강에 이르렀다. 물속에서 나는 뗏목을 타고 다니는 남자들이 부르는 정선아라리를 들었다. 노래가 무척이나 구슬펐다. 정선의 아우라지를 지나고 나니 물의 깊이가 이전보다 훨씬 낮아져 갔다. 물맛도 훨씬 강해졌다. 태백 가까이 와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봄이 시작될 때 움직였는데 여름이 훅 지나가고 이제 가을도 막 지나가면서 겨울로 바뀌어가는 중이었다. 물이 점점 차가워진 걸 보면 계절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 내 몸에도 아주 큰 변화가 나타났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인간으로 치면 이차성징 같은 거였다. 그날도 전날처럼 구불텅구불텅 헤엄을 치고 있는데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이게 뭔 일이지? 병이라도 걸린 것 아닌가, 그만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아픈 것은 아니었다. 아주 작은 줄만 알았던 내 몸이 커졌다는 것은 이미 알았지만 가슴팍 쪽이 근질근질해지면서 내 밋밋하던 몸에 작지만 다리가 생기고 발톱이 나왔다. 나는 감격했다. 엄마한테는 있었지만 나한테는 없던 그 다리와 발톱이 나온 것이다. 사람도 때가 되면 겨드랑이나 성기 주위에 털이 나오고 입이나 턱에서 수염이 난다고 했다. 아, 나한테도 인간에게서처럼 사춘기가 오고 있는 거였다. 신기하고 가슴이 떨렸다. 아빠가 용이 되어 승천하던 모습을 나는 본 적이 없지만, 마치 내가 본 것처럼 멋진 모습이 그려지는데 이다음에 내가 천년 수양을 다 채우는 날에도 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날 것 같았다.
이제 나도 용이 돼가니 아이처럼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도 자라면 엄마를 어머니라고 부르니까 나도 그렇게 하는 게 옳을 것 같았다.
몸에 생긴 다리와 발톱은 강물의 바닥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 바위 위를 지나가는 데 유용했다. 바닥이 얕을 때 쉽게 이동할 수 있으라고 선물처럼 다리와 발톱이 생긴 것에 감사했다. 하사미를 지나 상사미의 냇가에 이르니 물고기의 크기가 작아졌다. 피라미 대신 버들치 같은 작은 고기가 보이면서, 나를 낳아준 엄마의 고향이 다가오는 것을 몸으로, 혓바닥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물을 먹으니 머리가 맑아졌다. 적어도 이런 물맛이라면 남의 애꿎은 생명을 탐하지 않고 물만 먹고도 수양기간을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마저 들었다. 그동안 나는 고기를 많이 안 잡아먹겠다고 하면서도 많이 잡아먹으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어이없지만 나는 내 몸에 생길 비늘무늬를 생각해서 잉어와 붕어를 많이 잡아먹었다. 어느 순간이었을까. 이전에 비해 물맛이 훨씬 선명해졌다. 내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물맛에 감동하면서 물이 시작되는 지점을 향해 올라갔다. 물줄기는 점점 가늘어졌고, 뭍이 얕아 냇물 중간중간에 바윗돌도 많이 솟아나 있어 바위와 바위 사이를 잘 돌아가야 했고, 물이 얕은 곳에선 네 다리를 잘 써서 움직여야 했다. 어느 순간엔 물줄기가 내 몸보다 더 가늘어졌다. 내 몸도 다 담기지 않는 얕은 물에서 나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러다가 머리를 들어 산들을 바라봤다. 저기가 금대봉? 아니면 저기가 금대봉? 직감으로 이곳이 금대봉 중턱이라는 게 맞아 보였다. 나는 더 기운을 내서 물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왔다.
여기 도대체 무슨 소가 있다는 걸까? 인적도 없고 짐승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사람들이 잠을 자고 산에서 여우만 켕켕 하고 우는 새벽이었다. 누군가 나를 훔쳐보는 눈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상황에서 나는 바위 옆에 웅크리고 쉬었다. 서해에 있을 때 부산하고 혼잡했던 날들이 언제였던가 싶었다. 그 날들이 아주 까마득해 보였다. 어머니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내가 여기 이른 것을 알면 참 기뻐하실 텐데. 어머니도 아마 굴속에서 미동도 않고 있을 것이었다.
이렇게 작은 곳일 리가 없는데. 물을 보아서는 소(沼) 안쪽이 그리 클 것 같지 않았다. 보통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도착은 다 한 것 같은데 내가 꿈꿨던 소는 눈에 잘 보이지 않아 여기가 그곳이 맞긴 하나 의심을 했다. 그동안 거쳐 온 강들에는 소도 많았고, 강물 옆에는 못도 많았는데 그런 곳이 아니니 당황스러웠다. 다행히도 한참을 들여다보니 작게 물이 솟아오르는 구멍이 보였다. 그동안 한강에서 태백까지 오면서 거쳐 온 소하고 비교했을 때 이건 소라기보다는 물구멍 수준이었다.
여기에서 어떻게 수양을 해? 내 몸뚱이도 들어갈 수 없는 좁다란 웅덩이에서 말이야. 아니야, 어머니가 거짓말을 했을 리가 없어.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그 구멍을 잘 들여다보았다. 그때 어머니의 말이 기억났다. 나중에 샘을 만나거든 꼭 구멍을 잘 살피고 그 안쪽을 파고 들어가야 한다. 그곳은 너무도 귀한 곳이어서 아무한테나 보이는 데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나는 그쪽엘 가보지 못했지만 이무기들 사이에서는 그곳이 명당이라고 소문이 난 데가 아니었냐. 누구나 들어가고 싶지만 아무도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는 전설의 소가 아니냐? 그곳은 딱 한 마리의 이무기에게만 허락돼 있는 최고의 수양처란다. 어머니의 말이 기억났다.
요술을 부릴 힘이 없는 나는 어떻게 구멍을 내고 바위 안쪽으로 들어가나 고민을 했다. 나는 바다에 있을 때보다 몸집이 커졌기 때문에 좁은 구멍으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때 그 구멍으로 들어가기 위해 내 몸을 움직이자 와폭이 좌우로 생겼다. 이어 구멍을 막은 바닥의 바위를 어떻게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가 용기를 내어 들어올리기로 했다. 바위는 떡 버티고 있어서 생각보다 쉽게 움직이지가 않았다. 내 몸집은 아직
작았다. 물론 예전 바다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커졌지만, 나는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에 불과했다, 그래서 바위를 들어 올리고 구멍을 넓혀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 막 돋아나 아직은 그렇게 힘이 세지 않은 발톱까지 쓸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의 실패를 거쳐 온힘을 다해 바위에 힘을 주자 조금 들리면서 바위에 긁힌 자국이 났다.이건 나중에 알게 된 일인데, 내가 소 안에 자리를 잡고 수양을 시작한 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눈 밝은 사람들이 내 집 앞을 지나가면서, 그날 몸부림칠 때 생긴 자국을 보고는 용트림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바닥의 바위에 그어진 내 발톱자국을 보고 용 발자국이라고 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사람들의 눈은 정말 놀라운 데가 있다. 지금도 소의 바위에는 20여 개 가량의 내 발톱자국이 남아 있긴 하다.
어, 누가 내 잠을 깨우는 거야? 어깨가 왜 이렇게 근질거리지? 내가 움직이는 통에 바위 깊숙한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바위 아저씨가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었다. 나도 너무도 당황스러워서 아무 말도 못했다. 너는 어떻게 인사도 할 줄 모르냐? 아저씨의 그 말에 나는 더 말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바위 아저씨의 잠을 깨운 것보다, 바위에 낸 자국을 보고 사람들이 내가 온 것을 눈치챌까 그걸 더 걱정했다. 모름지기 누구든 인사를 잘 해야 성공하는 법이다. 아저씨의 그 말에 나는 주눅이 들어버렸다. 죄송하다고 말 하면 될 걸, 나는 오히려 성을 내고 싶어졌다. 나는 마치 내가 주인이라도 된 양, 바위 아저씨가 내 집에 세 들어 있는 것 같은 게 못마땅했다. 남의 집 문을 그렇게 꼭 닫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하고 신경질을 부렸다. 바위 아저씨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는 성격이 참 못됐구나. 음, 내 나름대로 오랜 시간 동안 어떤 친구가 오나 하고 기다렸는데, 너 같은 아이라니.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가 용이 되겠다고 나한테 찾아오면 그 친구를 잘 품어서 내 속의 맑은 물로 용이 되게 해주고 싶었단다. 그런데 너같이 성격 사나운 애가 찾아오다니? 너를 용이 되게 했다간 큰일 날 것 같다. 나는 발끈했다. 아저씨가 뭔데 나를 용이 되게 하고 안 되게 하는데요? 용이 되게 할 능력이나 있어요? 내가 스스로 용이 되는 거지요. 나는 거기까지 말했다. 속으로, 바위 주제에 말은 많아, 하고 구멍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아저씨는 내가 못 들어가게 막지는 않았다. 나는 구멍에 몸이 끼여 생채기가 날까봐 더욱 조심하면서 점점 더 몸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차가우면서도 청량한 기운이 확 끼쳐왔다. 맑은 물로 가득 찬 나만의 집이 나타나는데 어떻게 가슴이 안 뛸 수 있을까. 머리를 집어넣고 꼬리까지 다 들어간 소 안쪽을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세상에! 바다만큼 넓고 깊은 물이 그 안쪽으로 펼쳐졌다. 끝을 알 수 없는 지하 깊숙한 곳에서는 끊임없이 맑은 물이 솟아올라왔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몸을 받아들여주는 물이 너무도 고마웠다. 마치 엄마 품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이곳까지 오면서 사람들의 똥오줌과 가축들의 똥오줌, 그리고 빨래를 하면서 나오는 땟국물까지 별의별 물을 다 먹어봤다. 그러나 다른 물들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이곳의 물은 맑고 시원하고 달았다. 이 좋은 곳에서 나 혼자 지내도 된다니, 여기까지 오길 참 잘했다, 나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기적이 믿기지 않아 나는 그 너른 물속을 끊임없이 헤엄을 쳤다. 몸에 힘이 빠질 때까지 마음껏 헤엄을 쳤다. 여기가 내 세상이구나! 얼마나 헤엄을 쳤을까. 그동안 일 년 가깝게 이어진 노독 때문에 피곤이 몰려왔다. 이른 봄에 길을 떠나 겨울에 도착지에 이르렀으니까 인간의 시간으로 일년이 걸린 여정이었다. 나는 최대한 자유로운 자세로 잠을 잤다. 며칠을 잔 것일까. 하루, 이틀? 아니면 열흘? 바위 아저씨한테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머니가 이곳으로 가라고 한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찾아내려고 애썼던 그 물맛이, 천 배 만 배로 느껴졌다. 어머니의 젖 맛에 섞여 있는 이 물을 마시면서 지내는 것은 뭐가 그리 어렵겠나. 그렇게 하루하루 세상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물맛, 온갖 더러운 것이라고는 찾아내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최고의 물을 마시면서 천년인들 못 버틸까.
나는 그 물맛 앞에서 버틴다는 말을 쓰는 게 미안해졌다. 그 정도로 좋은 물이었다. 어떻게 맑은지 소 안에는 고기 한 마리 살지 않을 정도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기들 사이에서 설움을 겪었나. 이제 나를 괴롭힐 것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맑음이 너무도 좋아 끊임없이 헤엄을 치고 또 쳤다.
마냥 맑은 물이 좋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얼마 못 갔다. 소로 온 지 한 달이 채 안 지나간 것 같은데, 몸이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맑은 물속은 천국이 아니라 감옥, 지옥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여기로 오던 강물과 냇물의 시간들이 그리웠다. 그땐 먹을 것도 있었고, 내게 말을 걸어줄 고기들도 있었으니까. 그땐 사람들 얘기도 들을 수 있었으니까. 모든 것들이 다 그리워졌다. 어쩌면 바닷속이 더 좋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많은 고기들이 나를 무시하긴 했지만 바닷속에선 엄마가 내 친구였으니까. 무엇보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그리워졌다. 가끔 야단을 쳐도 엄마는 내 편이었고, 내 고민에 대해 답을 주었으니까. 그런데 이젠 그런 것들하고는 영원히 작별을 한 채 오로지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거였다. 바깥에 귀 기울이지 않고 얌전히 있는 것, 이것도 쉬운 일 같았지만 쉽지 않았다. 무료함을 견디는 게 곧 수양이라고 하는데도 나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그냥 무의미하게 시간만 보내면 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참을 줄 알고 멋진 꿈을 꾸어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인간 세상과는 담을 쌓아야 하며 절대로 사람들 눈에 띄어서는 안 되고, 사람들한테 원성을 살 일을 만들면 안 되는 것을 생각하면 숨이 막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몸을 뒤틀고, 헤엄을 쳤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어떻게 이 무료한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구멍 밖 세상이 자꾸 궁금해져 내다보게 됐다. 내 눈과 귀는 늘 구멍 쪽으로 가 있었다.
심심한 게로구나. 바위 아저씨가 아는 척을 해왔다. 나하고 친구를 하면 안 되겠니? 나는 그 말에 귀가 솔깃하긴 했지만, 잔소리쟁이는 싫었다. 됐어요, 하고 퉁명스럽게 말을 해버렸다. 쯧쯧쯧. 너를 품고 있는 게 내 일이라 참긴 하겠지만 마냥 참고 있어서는 안 되겠어서 한 소리 한다. 다들 여기로 들어오는 게 소원일 텐데, 너는 여기 있는 게 벌써 지루한 게로구나. 바위 아저씨는, 낮고 굵은 음성으로 내게 또 잔소리를 했다. 나는 바위 아저씨한테 잔소리 듣는 게 썩 달갑지 않았다. 한곳에 붙박혀 있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바위가 내게 잔소리를 하다니. 세상이 어떻게 되어돌아가는지 모르고 산골짜기 깊은 곳에 처박혀 있는 바위가, 서해부터 위험을 무릅쓰고 내 집에 도착한 나 같은 청소년한테 아는 척을 하다니. 나는 대꾸를 하려다 말고 그럴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구멍만 끊임없이 내다보았다.
얘야, 바깥을 자꾸 내다보게 되면 이곳은 더더욱 싫어지게 된단다. 아저씨가 또 잔소리를 했다. 남이야, 밖을 내다보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참고 참다가 퉁명스럽게 쏴붙이자 아저씨는, 음, 너는 너무 성격이 모가 나있어.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단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너는 그 말은 못 들어봤니? 모가 나 있어봐야 너만 힘들단다. 모난 부분을 깎아내야 한단다. 바위 아저씨가 해주는 말은 다 불편했다.
아저씨나 많이 깎아내세요. 저는 저만의 삶이 방법이 있으니까 아저씨는 상관하지 마세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요.
바위 아저씨는, 네가 정 불편하다면 아무 말 않겠다, 그러나 남의 말을 함부로 대하는 이 치고 성공한 이가 없다는 사실은 꼭 기억해다오, 하고 입을 닫았다. 나는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부피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도 못 하겠는 바위를 이리저리 보다가, 참으로 따분한 삶이군, 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만 어떻게 하면 몰래 빠져나가 바깥 구경을 하고 올 수 있나, 밤이 올 때만 기다렸다. 구멍으로 밖을 내다봤을 때 소에 들어있는 물로 달이 비쳤을 때, 밤인 것을 확인한 나는 바위 아저씨의 반응엔 신경 안 쓰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바깥의 기운이 몸을 감싸니까 살 것 같았다. 이렇게 좋은 것을. 바깥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근질근질했다.
한 번이 어려웠지 두 번째부터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처음엔 겁을 내면서 조마조마했는데 한두 번 더 하다 보니 맛이 들렸다. 사람들 눈에만 안 띄면 되지, 뭐.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면서 매일 밤이면 밖으로 나가게 됐다. 바위 아저씨는 그때마다 아이고, 이 철부지를 어떻게 하면 좋나,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저씨는, 아저씨 일에나 신경을 쓰세요, 하고 나는 야멸치게 쏘아붙였다. 아저씨는 내가 몸이 가벼워 바깥나들이를 하는 게 부러운 거지요? 부러우시면 부럽다고 말하세요, 하고 나는 심통을 부렸다. 너는 너무 되바라졌어. 문제구나, 문제! 아저씨가 절망스럽다는 듯 말했다.
소 안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잘 몰랐는데,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구경 나가다 보니 내 몸에 인간의 시간이 배었다. 새벽에 들어와 낮 동안은 쿨쿨 자고 다시 저녁이 이슥해지고 밤이 깊어지면 밖으로 나가기를 되풀이했다. 점점 요령이 생겨 나는 사람들 눈에 안 띄게 다닐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은 나를 잘 못 보지만, 개들은 나를 용케 알아보고 짖었다. 소들도 되새김질을 하다가 큰 눈으로 나를 보고 깜짝 놀라서는 음머 하고 울었다. 나는 사람들의 방문 밖에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양반으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상놈으로 태어나니 죽어라 고생해도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어. 올해는 더군나나 흉년이 들어 소출이 없는데, 내야할 도지는 더 많다니. 이것 떼고 저것 떼고 나면 기껏해야 빚 농사를 지은 거야. 가만 내버려둬도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원님 등살에 더 살기 힘들어졌다고 원성이 자자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싸울 일이 너무도 많았고 죽일 일도 많았다.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다 살기 힘들다고 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는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얘기를 듣다보면 마음이 쓰렸다. 내가 용이 되면 못된 것들을 혼을 내줄 수 있을 텐데. 힘든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을 텐데. 나는 마을에서 소 안으로 돌아올 때는 늘 시무룩해졌다.
매일매일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나에게 잔소리가 안 통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바위 아저씨는, 지금 나가냐, 이제 들어오냐, 같은 안부 외에는 별로 묻는 게 없었다. 나는 문지기처럼 끊임없이 내 출입에 관심을 드러내는 아저씨가 없으면 얼마나 편할까 그 생각만 했다. 또 바깥 이야기를 해주면 조금이라도 알아차리긴 할까, 그런 생각이 들면 아저씨를 더 무시하게 됐다.
사람들이 사는 걸 둘러보고 소 안으로 돌아오면 머리가 뒤숭숭해지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사람은 남녀가 사랑도 하고 혼인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하는데, 나는 그런 것도 안 하고 혼자서만 쭉 수양을 해야 하는 건가. 밖에 나가 이무기 처녀를 만나 연애라도 해야 하는 건가, 그 생각이 들면 밤에 잠이 안 왔다. 뜬눈으로 밤을 새울 때도 많았다. 얼른 용이 돼야 해. 그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테니까. 내 생각에 안 빠지면 어제, 그제 둘러보고 온 사람들의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면 소 안의 물이 맑은 것까지도 짜증이 났다. 아, 답답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국이었던 이 물속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바깥을 구경하고 오면 올수록 이곳 소 안이 하찮게 여겨졌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나는 이제 용이 되는 것보다, 용이 안 되고 이대로 사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최고의 문제는 배고픔이었다. 처음에 소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 고프지 않던 배가 바깥세상을 둘러보고 온 이후로는 심하게 고파졌다. 물속에 가만히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먹고 지내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참기 힘들었다. 자잘한 물고기도 못 먹고 차가운 물속에서 금식 수양을 해야 한다니. 그것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졌다. 아무것도 안 먹고 천 년이 될 때까지를 기다려야 하다니. 이게 보통의 과제가 아니었다. 배가 고파도 참자, 이 물만 마시고 참아도 용이 된댔으니까. 나는 그 말 하나만 기억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굴 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바깥에서 본, 사람들이 밤에 뭔가를 먹던 게 기억이 났다. 잘사는 사람들은 밤에도 고구마다, 감자다, 식혜다, 뭐다 해서 왁자지껄 떠들고 웃으면서 뭔가를 먹었다. 그런 것이야 내가 먹을 것은 아니라지만, 당장 자잘한 피라미라도 있으면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 먹었던 물고기들의 맛이 기억났다. 맞다, 그렇게 맛있는 게 있었는데! 잉어의 맛을 기억하고 메기의 맛을 기억해 냈다. 물고기의 맛이 기억나면 온몸이 비비 꼬이고 뱃속에서 뭔가를 자꾸 들여보내라고 신호를 보내왔다. 그럴 때면 물 속 바닥 깊은 곳에 깔려 있는 자갈들이라도 건져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 안 먹고 어떻게 용이 된다는 것이지? 나는 용을 본 적이 없지만, 용이 소보다 큰 건 분명해 보였다. 용이 되려면 소를 잡아먹어야 해. 그래야 얼른 내가 용이 될 거 아니야. 소를 잡아먹어야 더 살이 많이 붙고 용이 되는 날도 앞당겨지지 않겠어? 내가 생각해도 신통한 생각이었다. 오호라, 소를 잡아먹어야지. 나는 그날부터 소 잡아먹을 생각에 온 몸과 마음이 구멍 밖을 향해 있었다. 이젠 기필코 소를 잡아먹으리라. 바위 아저씨가 신경을 쓰든 말든 괘념치 않고 소를 잡아먹기 위해 굴 밖으로 나갔다. 민가로 가는 데까진 성공을 했지만 개들이 짖는 통에 소를 잡아먹기는 힘들었다. 내 몸집이 아직 작아서 소와 씨름을 하다가는 사람들한테 들킬 것 같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사람한테 내 존재를 들키면 용이 되는 것은 말짱 헛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이 내가 이무기인 것을 알아채고, 아, 이무기구나, 하고 말을 해 버리면 나는 용은 못 되고 이무기로 머물면서 평생 한탄만 하게 되지 않겠나. 더군다나 개라는 놈도 내 힘으로는 다루기 힘들었다. 이래저래 민가에서 소를 잡아먹는 것은 포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날이면 날마나 소가 제 발로 내 집 앞까지 와주길 빌었다. 그건 인간의 말로 익지도 않은 감이 알아서 떨어져주길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랫마을 사람들이 금대봉의 풀이 소의 꼴로 좋다고, 풀이 잘 자란 소(沼) 근처 언덕에다가 소들을 몰아다 두고 그냥 내려갔다. 그들은 소들이 알아서 꼴을 다 뜯어먹을 때까지 몇 날이고 그대로 두었다. 한밤중 몰래 소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주 흐뭇했다. 저 맛있는 고기들, 하면서 나는 침을 삼켰다. 이담에 내가 용이 될 때 소의 뿔이 내 뿔과 발톱을 더 튼튼하게 해줄 것도 같았다.
소들은 무리지어 있는데다가 잘 때는 붙어 있어서 내 기운으로는 어떻게 잡아먹을 도리가 없었다. 번번이 허탕을 치고 그냥 소로 들어오고 말았다. 내가 기운이 없이, 욕구불만으로 가득 찬 얼굴로 들어올 때마다 바위 아저씨는, 너만 힘들어진다, 얌전히 물에 가만히 있을 순 없겠니? 너가 들어있는 그 물은 아무나 마실 수 있는 게 아닌데, 그 물만 마셔도 용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닌데. 아쉽구나, 하면서 눈을 끔벅거렸다. 그럼 아저씨나 용이 돼 보시든가요. 아저씨가 이무기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시는 거 아니에요, 하고 나는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그러고 한 달이 지나갔을 때였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나. 모두가 잠 든 그 밤, 구멍에 눈을 대고 바깥 동정을 살피고 있는데, 소 한 마리가 목이 마른지 내 집 앞 쪽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물을 먹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바로 굴 밖으로 나가서 물을 마시는 소의 목덜미를 온 몸으로 감았다. 그 동안 소를 먹고 싶었던 그 마음이 다 모아지니까 소 한 마리 잡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앞발로 소의 목을 붙잡고 숨통을 끊어버렸다. 소에게서 붉은 피가 넘치게 나왔다. 소의 털과 뼈만 빼놓고는 모든 부위를 먹어치웠다. 다만 고삐와 코뚜레는 먹을 수 없는 것이라 내버려두었다. 나보다 훨씬 몸집이 큰 소를 먹었는데도 이상하게 배는 불러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먹은 듯 구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게 어렵지 않다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소를 잡아먹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이지 한 번 맛을 보고 나니 수양이고 뭐고 하나도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소의 맛은 훌륭했다. 내 혀는 소의 맛을 기억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눈과 귀는 온통 구멍 쪽을 향해 있었다. 소 안의 물맛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기쁨이 되질 못했다. 매일매일 소가 나타나주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내 바람대로 소는 매일 밤 내 집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소의 맛에 감탄을 하며 매일 포식을 했다. 이렇게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소를 먹어가다 보니 사람들이 매어놓은 한 무리의 소가 다 없어졌다.
며칠 후 소를 데리러 온 마을 사람들은 소가 한 마리도 안 남은 걸 보고는 혼이 빠졌다. 귀신이 데려갔다느니, 도깨비가 데려갔다느니, 산적들이 나타나 잡아먹었다느니, 근처 마을 사람들이 훔쳐갔다느니, 소들이 꼴을 다 먹어 떼거지로 다른 데로 꼴을 찾으러 갔다느니 의견이 분분했다. 사람들은 마지막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어딘가에 소들이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그들은 내려갔다.
소가 없어진 게 서운한 건 나 역시 소 주인들 못지않았다. 소가 없는 풀밭을 바라보니 맥이 탁 풀렸다. 어떻게 하면 소를 계속해서 먹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마을이 이 근처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옳지! 태백산 주위의 크고 작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천 마리의 소를 잡아먹으면 용이 빨리 되지 않을까, 하는 야무진 생각마저 들었다.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되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소를 더 먹고 싶은 욕심을 끓을 수 없어 나는 원정 소 사냥까지 생각했다. 나중에 발각된다 치자. 용이 안 돼도 좋다, 그냥 태백에 머물면서 소 사냥이나 하면서 보내는 것도 좋지 않겠어, 하는 유혹이 밀려왔다. 금대봉에서 소들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퍼져서 여기저기 경계를 하고 있을 텐데도, 내려갔다가 발각되면 죽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사냥을 단념하지 못했다.
오늘밤에는 꼭 사냥을 나가야지, 하고 벼르던 날 오후였다. 금대봉에서 머루와 다래를 따가지고 오던 소년 둘이 물을 마시러 내 집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순간 소년 둘을 잡아먹으려 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사람한테는 무기가 있었다. 나를 보는 순간, 이무기다, 하고 외치기만 하면 나는 힘을 못 쓰고 주저앉으니까.
소년들은 소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을 마시고는 잠깐 쉬었다. 야, 여기만큼 물맛 좋은 데도 없다, 그치? 첫 번째 소년의 말에, 그렇긴 한데, 뭔가 물에 비린 맛이 섞여 있어. 안 그래? 두 번째 소년이 대꾸를 했다. 먼저 첫 번째 소년이, 그렇긴 해,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아, 저기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게 있어. 이게 도대체 뭐지? 아니, 이게 왜 이렇게 여기 많이 쌓여있지? 그러자 두 번째 소년이 맞다, 이건 우리 동네 죽은 소들의 코뚜레 아니야? 아, 세상에, 세상에, 여기서 소들이 당한 거야. 세상에, 이건 호랑이 짓은 아닌 것 같고. 산적들이 있었나? 두 번째 소년이 연달아 말을 이어나간 후, 첫 번째 소년이 그러게 참 이상한 일이다,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두 번째 소년이 가만 있어봐, 저기 물 속 바위 쪽에 뭔가 긁힌 것 같은 자국이 보이지 않아? 하고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러게, 뭐가 있긴 하네. 첫 번째 소년이 그렇게 대답을 했다. 아우, 으스스해, 우리 얼른 여길 떠나자, 하고 소년 둘은 일어나 줄행랑을 놓았다. 나는 두 소년이 팽개친 주루목에서 머루와 다래를 꺼내보았는데, 그건 내가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소가 너무 맛있어서, 고삐와 코뚜레를 버리는 것도 깜빡한 내가 참 딱해 보였다. 여길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내 흔적을 남기는 것을 유난히 신경 썼던 내가 이렇게 천하태평이었다. 늦었구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별일이야 있으려고, 하는 마음으로 고삐와 코뚜레만 모아다 멀리 내다버렸다.
소년들에게 내 거취를 들켜버렸는데도 나는 소를 먹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그래서 밤마다 사냥을 나가기로 했다. 이제 바위 아저씨는 내 고집을 못 꺾겠는지 아무 소리도 안 했다. 그저 나를 볼 때마다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나는 달도 안 뜬 한밤중에 밖으로 나가 나무 뒤에 숨거나 울타리 뒤에 숨어서 소 사냥의 기회를 엿보았다. 농사를 짓는 집집마다 소가 한두 마리는 있었는데, 그걸 하나씩만 잡아먹어도 용이 되는 날이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면서. 조심만 하면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만 천년 시간이 흐른다면 까짓 거 아무 문제없이 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시간만 때우고 살만 찌우면 용이 되는 줄 알고 매일매일 사냥을 나갔고, 여러 마리의 소를 잡아먹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소가 아무 소리도 못 내게 목을 따고 잡아먹는 방법을 터득한 상태였다.
소를 잃어버린 집에서 곡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우는데 미안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전혀 아니나 내가 용이 되면 까짓 거 요술을 부려 열 마리, 백 마리는 못 만들어줄까, 그때 다 갚아줄게, 하면서 나는 소 잡아먹는 걸 멈추지 않았다. 처음엔 간에 기별도 안 가고 먹어도먹어도 변함이 없더니 열 마리를 먹고 백 마리를 먹으니 몸이 점점 불어났다. 내 생각으로는 소를 잡아먹어 몸집이 더욱 커지니, 용만해진 것 같고 기운도 점점 세지니 누가 함부로 접근을 못할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문제는 몸집이 커져서 소의 구멍을 통과해 내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몸을 더 길쭉하게 늘리고 겨우겨우 빠져나갔다가 겨우겨우 들어오게 되었다. 이젠 누가 봐도 이무기라고 할 수 없게 용의 형상과 가까워지고, 비늘도 예전보다 훨씬 넓적해지고, 뿔이 올라오려고 이마도 근질근질해지고 있었으니까. 매일 커지는 나의 몸이 만족스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바위에서 소리가 났다. 아저씨였다. 이제는 멈출 때가 되지 않았니? 너 그러다가 큰 코 다친다. 큰일 난다. 바위 아저씨가 목이 멘 상태로, 내게 사정을 했다. 나는 다 된 밥에 코 빠뜨리지 마세요, 하고 들은 척도 안 했다. 나중에 후회를 안 했으면 싶다, 하고 아저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다 돌면서 다시 소 백 마리를 먹겠다고 사냥을 나간 어느 날이었다. 생각보다 소 있는 집이 많지 않아서 소를 찾아다니는 것이 쉽지 않았다. 천 마리의 소를 먹는 것도 까마득한데 천년을 견뎌야 하다니, 좌절감 때문에 소를 맛있게 먹고도 어깨가 축 처져서 들어온 새벽 나는 잠이 들었고 내 생애 최악의 꿈을 꾸었다.
멋지게 생긴 소(沼) 주위에 꼴들이 검푸르게 자라 있었다. 그 꼴들을 보고 소들이 마구 몰려들었다. 아, 저 맛있는 것들. 나는 군침이 돌고 온몸에 힘이 솟구쳤다. 물가로 들어서는 소의 목을 낚아채려던 순간이었다. 분명히 내가 발톱을 꽂은 것 같은데, 뭔가 날카로운 것이 내 몸에 꽂혔다. 어찌나 아픈지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비트는데, 소 뒤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네 이 나쁜 이무기 놈, 딱 걸렸다. 감히 우리 소를 잡아먹어? 너를 잡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만든 작살이다, 이 나쁜 이무기야! 이놈아, 너 좋자고 사람들 가슴에 못을 박냐? 그게 어떤 손데? 평생 죽어라 고생해서 소 한 마리를 사 매었는데, 그걸 네 놈이 한순간에 해치우다니, 그래 놓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냐? 아이고 원통해. 이참에 다시는 기어나오지 못하게 죽여 버려야지. 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으면서 인정사정없이 작살로 내 몸을 찔러댔다. 백 개, 또 백 개, 나는 비명을 지르고 또 질렀지만, 아직 꽂혀 있는 작살보다 찍으려고 든 작살의 수가 더 많았다.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는데도 아무도 나를 도와줄 이가 없었다. 나는 용이 된 아버지를 부르고, 용이 되려고 수양 중인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나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타나주지 않았다. 소를 빼앗긴 집에서 한 자루씩 만든 그 작살이 내 몸을 사방에서 찍어댔다. 나는 뱃구레를 뒤집으면서 그 작살을 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내 다리와 발톱으로는 작살을 뺄 수 없었다. 백 개의 작살이 꽂힌 나는 몸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소들이 떼로 몰려들어서 나를 뿔로 박고 넓적한 발바닥으로 마구 짓이겨댔다. 어찌나 아픈지 나는 그만 기절을 하고 말았다.
그때 내 영혼이 만신창이가 된 몸에서 빠져나왔다. 멀리서 내 몸을 보니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안 돼, 이렇게 쉽게 무너지면 안 돼, 나는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나는 용이 될 몸이라고. 이렇게 없어지면 안 된다고. 안 돼, 안 돼. 수없이 소리를 지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없어져버린 것 같은 내 몸이 살아있다. 내 몸이 그대로 남아있다니. 꿈만 같았다. 어찌나 놀라고 원통했는지, 깨어나서도 안 돼, 안 돼, 하고 소리를 쳤다. 나는 죽은 게 아니었고 꿈을 꾸다 깬 것이었다.
그동안 소 안에서 얌전히 수행하지 못하고 밖을 나오고, 급기야 소를 백 마리나 잡아먹고도 더 잡아먹으려고 애를 쓴 내 죗값을 혹독하게 치러야 하는데, 그것도 꿈속에서 가짜로 치르고 이렇게 살아있는 게 미안해졌다. 영월 근처를 지나오다가 소를 잡아먹다가 작살에 찔려 죽었다는 어느 이무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이무기를 얼마나 무시했던가.
살아있는 게 너무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행이 아닌 건 내가 사람들에게, 소들에게 너무도 큰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엄마의 말을 기억하지 못한 채 너무도 많은 이들에게 원성을 살 짓을 했던 것이다. 꿈을 꾼 이상 이제 멈춰야지. 이제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지, 소를 잡아먹지 말아야지 하고 굳게 다짐을 했다. 이제 그 구멍으로 다시는 세상을 내다보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내 스스로 구멍을 막아놓고 용이 되기 에는 절대 안 나가리라 다짐했다. 다짐 후에 소의 구멍을 막으려고 벽 앞으로 다가갔을 때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동안 내가 빠져나가고 들어오던 구멍이 돌로 막혀 있었다. 바위 아저씨를 흔들었다. 아저씨, 아저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아저씨는 내 성화에 눈을 떴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누가 그랬을까? 꿈속의 일들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꿈속에서 소들이 발바닥으로 나를 짓밟던 순간이 사람들이 큰 돌로 굴을 막고, 호박돌을 연신 채워 넣던 때였다는 걸. 아직 밖에는 사람들이 안 갔는지 욕을 하고 저주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소를 잃은 원통함을 달래게 됐어. 작살로 한방에 꿰어버렸어야 했는데. 불에 구워서 먹었어야 하는데. 이젠 이무기 아니라 뱀도 만나면 가만 안 두겠어. 이무기라면 이가 갈린다고. 이무기를 죽이면 마을에 불상사가 생길까봐 가만 놔두는 건데, 생각 같아서는 죽여서 간을 내 씹어도 분이 안 풀려. 안에 있는 이무기, 이 나쁜 놈아. 영원히 그 안에서 못 나오고 죽어 없어져라. 그들은 나를 저주했다.그 말들은 정말로 작살 같았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내 온몸에 작살이 박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얼마나 소를 잃어버린 고통이 심했으면 그런 모진 말을 내뱉었을까, 내 악행이 너무 부끄럽고 죄송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실제로 겪지 않은 고통인데도 끔찍한데 내가 목을 딸 때 소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리고 평생 이밥에 고깃국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던 사람들의 희망을, 그들의 재산목록 중 제일 첫 번째를 하룻밤에 한 마리씩 먹어버린 나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괴물인 걸까. 어머니는 수양을 제대로 하고도 하루를 못 채워 이무기로 머물렀는데, 나는 하지 말라는 것을 어깃장을 쳐놓고도 억울하다고 몸부림을 치는 괴물이 돼 있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바위 아저씨가 한 말을 가볍게 들으면 안 되는 거였다. 나는 눈을 감고 물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막으려고 했으면서도 막상 구멍이 막히고 나니까 영원히 이 안에 갇히게 된 것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절망감에 오히려 앞발로 힘껏 구멍을 막고 있는 돌을 들어 내보려 하게 됐다. 그러나 돌들은 끄떡도 안 했다. 먹는 것은 둘째 치고 밖으로 아예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절망적이었다. 이렇게 꼼짝없이 갇혀 버리게 되다니. 어린 내가 여길 들어올 때도 겨우 들추고 들어갔던 그 굴을, 힘이 더 세진 그때로서도 엄두도 못 내게 들어 올릴 수 없다니. 발톱이 빠지도록 긁어보고 힘을 주어봤지만 소용없었다. 하루를 헷갈리는 바람에 용이 못 되고 용 비슷한 몸으로 바다까지 살러간 어머니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더 절망적인 건 소의 맛을 본 대가로, 소를 너무 많이 잡아먹은 대가로 그동안의 수양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몸부림치면서 울고 또 울었다. 어머니 말을 무시한 나는 당연히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게 맞았다. 구멍이 막히니까 도대체 며칠이 갔는지도, 몇 달이 갔는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악을 쓰고 울었다. 한 달이 지났을까, 아니면 일 년이 지났을까. 그렇게 비비 꼬고, 아무도 낼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면서 우는데도 아무도 말을 걸어주는 이가 없었다. 철저하게 나 혼자였다. 기절을 몇 번 하고 깨어났다 다시 기절을 하고 깨어나 울었는데도 역시 나 혼자였다. 나는 말을 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물은 말이 없고, 그나마 말을 해줄 이는 바위 아저씨밖에 없는데, 아저씨한테는 염치가 없어 말을 걸 수 없었다. 내가 머리를 짓찧고, 굴의 벽에다 발톱으로 아무리 긁고 난리를 쳐도 아저씨는 반응이 없었다. 아저씨가 죽었나, 하는 생각마저 할 정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 기운도 없었다. 소를 먹고 찐 살도 다 빠지고 기운도 하나 안 남은 어느 순간이 됐다. 뭔가를 먹을 기운도 나지 않는 시간이었다. 죽은 듯 엎드린 채 물 속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였다.
검룡아.
나는 똑똑히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저씨였다. 아저씨의 목소리에 걱정이 많이 배어있었다.
검룡아, 이제 정신이 좀 드니?
네, 아저씨.
나는 그동안 내가 저지른 악행이 기억나 똑바로 대답을 못 하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꾸를 했다.
너는 하루도, 한 달도 그렇게 견디기 어려워하면서 천년을 어찌 보낼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니?
…….
너는 이 아저씨, 아니 이 할아버지가 몇 살로 보이니?
네? 아저씨의 나이요?
그래, 내 나이 말이다.
글쎄요. 백 년? 아니다. 천 년? 아니다. 만년?
다 틀렸다.
너는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세상이 생길 때부터 있었다. 너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나이지. 너는 죽었다 깨도 계산할 수 없는 시간이지. 이 세상의 온갖 동식물이 생기기도 전에 나는 있었단다. 그러니까 세상 어떤 풀과 어떤 나무와 어떤 동물도 내 나이보다는 안 많지. 나는 그때부터 이곳에 있었다. 물론 땅속이 진동하면서 뒤틀리고 깨지고 깎이고 하면서 여기까지 왔지. 이곳에 있는 동안 얼마나 숱한 계절이 바뀌었는지 아니? 나는 어디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늘 이 자리에만 있어야 했단다. 새들이 날아가는 걸 보면 그게 부럽고 또 부러웠지. 그러나 그건 내게 주어지지 않았단다. 나는 내 안에 물을 품고 있으면서 그 맑은 물을 흘려보내주는 게 내 몫이었단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꿈이 생기더구나. 나보다 더 맑지 않은 물로도 용을 만드는 소가 있다고 들었다. 나도 그럼 용 하나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새들한테 금대봉 쪽 에 맑은 물을 가득 품고 있는 소가 있다는 얘기를 그들에게 전해주라고 보냈단다. 정확한 장소는 알려주지 말라고 했지. 겉으로는 잘 안 보이고 찾으려 애쓰면 찾아지는 곳이라고. 그 말을 전해 듣고도 이무기들은 여길 못 찾아내더구나. 그들은 용이 되는 자격 중엔 꼼꼼하고 착실한 것, 이런 것도 포함돼 있는데 그것이 없는 친구들이 많더구나.
검룡아, 나는 이곳에서 용을 하나 제대로 만들어 내보내는 게 꿈이었다. 그 누구보다 더 맛이 기가 막힌 물을 만드는 데 열중했고, 이 물을 찾아서 이무기가 들어오길 바랐단다. 너는 꿈조차 꿀 수 없는 그 오랜 시간을 나는 이 꿈을 꾸느냐고 참아낼 수 있었단다. 너가 여길 처음 찾아 들어올 때만 해도, 나는 너무도 반가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미 너가 온 줄 알았지만, 네가 소의 구멍을 찾아 헤매는 것도 모른 척 가만히 있었지. 너한텐 용이 될 근성이 있어 보여 지켜보기만 했단다. 그런데 너는 인사도 안 하고 나를 아주 가볍게 여기더구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더구나. 그래서 솔직히 많이 서운했다. 그래서 나도 더 친절하게 너를 대해줄 수 없었다. 물론 너는 내가 누군지를 잘 몰랐을 테니까 그게 당연했겠지. 너는 너가 아는 것만 알았지 내 나이도 내 성격도 그땐 알 수는 없었겠지. 하지만 세상에 내가 모른다고 해서 무시해서 되는 건 없단다. 모르면 배우려고, 알아보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지. 그런데 너는 알려고도 안 했다. 용이 되려고 하면서 그것도 모르고 있었을까. 그리고 용이 되려고 하면서 그렇게 남의 말을 안 들을 수 있을까. 나는 그게 너무 속상했다. 그래서 네가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네가 나간 다음 이 굴의 문을 꽉 닫아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지. 그러고 너한테 협박을 할 수도 있었겠지.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그럼 가만 놔주겠다고. 사실 네가 용이 되려는 그 천년 세월 따윈 나한테 시간 축에도 못 낀다. 그동안 참아온 것에 비하면 천년이란 시간도 어쩌면 인간의 하루도 안 되는 시간일 수 있지. 셀 수 없이 길고 길었던 그 시간을 견뎌온 내게 천년은 아기 장난밖에 안 된다. 그런 내가 이렇게 떡 버티고 있는데, 하루가 힘들다고? 며칠이 힘들다고? 고작 일이 년에 발광을 해서 쓰겠냐? 그럼 못 쓴다. 검룡아, 내 말이 들리긴 하냐?나는 바위 할아버지-얘기를 듣고 나니 이제 아저씨라고 부르면 안 될 것 같았다가 해주는 말을 듣는데 너무도 부끄러워 숨고 싶어졌다. 아무렇게나 천년을 보낸다는 것은 용에게는 있을 수 없었다. 소를 마구마구 잡아먹고 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나. 내 꿈을 이룬답시고 남들의 귀한 생명을 닥치는 대로 없애버린 나는 나쁜 이무기였다. 바다에 있을 적부터 태백까지 오는 물길, 한강부터 시작해 모든 강과 개울을 거치는 중에 만난 수없이 많은 고기를 잡아먹었고, 또 이곳에 와서는 소까지 욕심을 부려 백 마리가 넘게 잡아먹었으니 나는 그 상태로는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게 맞았다. 내 습관, 내 잘못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용이 된다고 생각했다니. 몸피만 커지면 용이 된다는 나의 어리석었던 생각과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 숨고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다. 바다에서 내 생김새를 보고 뭐라 할 때도 이런 부끄러움은 아니었다. 바위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자갈 하나, 모래 하나밖에 안 되는 지극히 자잘한 존재라는 것이 깨달아졌다. 할아버지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용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의 본성을 다 바꾸고 어느 누구도 흠 잡을 수 있는 훌륭한 성품, 훌륭한 자세를 갖고 있고 있는 것을 뜻하는데, 그렇게 경거망동하고 욕심대로 살아가면 네 외모가 용이 되었다고 한들 누가 너를 용으로 인정해 주겠니? 너는 천년을 채운 괴물이 되는 거란다. 이제 그 괴물이 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나쁜 습성도 버리도록 해라. 그게 용이 되는 첫 시작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 모습 그대로 영원히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힘을 내서 악하고 더러운 습성은 다 빼어내도록 해라. 그동안 네가 기억하는 인간의 시간을 네 몸에서, 마음에서 다 빼내도록 해라. 내가 너를 도와줄 테니.
바위 할아버지의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창피했다. 괜찮다. 울고 싶을 땐 마음껏 울어도 된다. 할아버지는 가까이 오라고 나를 불렀다. 나는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이렇게 따뜻한 분인 줄 모르고 무례하게 군 것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어주었다. 네가 머무는 이 물은, 그 어떤 것도 귀하게 만드는 힘이 있고 안 먹어도 배부르게 하는 힘이 있단다.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마시고 이 안에서 꿈꾸도록 해라.
나는 고분고분해져서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다.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좇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을 제대로 하는 존재가 돼야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겉모습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생각이 제대로 박혀야 용이 된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용으로서 지녀야 할 품격, 인내와 배려는 없으면서 용이 되고만 싶었던 내가 어이없었다. 이미 먼저 주어진 시간은 내 실수로, 내 잘못으로 어그러뜨려 놨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이제 다시 천년의 시간을 보내야지, 강한 의욕이 생겼다. 하루를 못 채워 이무기 상태, 용이 되기 전 상태로 머무르고 있는 엄마를 생각하면 내가 못 할 게 뭐가 있나 싶었다. 엄마도 다 참고 지금쯤은 용이 되어 하늘을 날고 있을까? 아니면 그 수양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용이 되었던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과, 다시 용이 되려고 절치부심 근신하고 있던 어머니를 동정과 연민으로 바라보게 됐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어머니를 기억해 내니, 내가 떼를 쓰고 말도 안 되는 말로 가슴에 못을 박던 때가 떠올랐다.
나는 네 다리와 발톱에 강한 힘을 주었다.
바위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보니, 이제 바위 할아버지 옆에 있으면 천년은 그리 무서울 것 같지 않았다. 잘못을 깨닫고 보니 나에게 소 안에 갇혀 있는 시간을 허락해준 사람들이 오히려 고마워졌다. 소 안쪽에 독약을 집어넣지 않고 구멍만 막아준 사람들이 고마워졌다. 나를 살려준 데 대해서, 그리고 오로지 수양에만 집중할 수 있게 구멍을 막아준 것에 대해서. 그렇게 고마워하고 나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세상과 완전히 담을 쌓게 해주니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게 수양밖에 없었다.
맑은 물만 마시고 또 마시다 보니, 바로 용이 되지 못한 걸 원망하는 마음, 자책하는 마음도 차츰차츰 줄어들었다.
천년의 세월을,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보낼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됐다. 내가 잘못 살아왔던 게 보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내 욕심을 잘 다스려야 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되고, 가장 좋은 환경을 탓하면 안 되고 내가 있는 곳이 가장 좋은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하나하나가 몸으로 깨달아졌다. 그 부끄러움을 줄이기 위해서 여의주를 얻고 난 다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나로 인해 생명을 잃은 바다와 민물의 고기들에게, 소들에게 용서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의 주인들, 그 자손들에게도 복을 빌어줘야겠고 생각했다. 농사가 잘되도록 비와 구름, 바람을 이용해 줘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악해지기 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들었던 사람들의 애환과 고통들이 기억났다.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었던 예쁜 마음이란 게 나에게 있었는데, 그 마음을 잘 살려 여러 방면으로 돕고 싶었다. 그렇게 소 밖으로 나가서 내가 행할 좋은 일들을 그려보다 보니 내 마음과 몸도 건강해졌다. 원망하고 자책하기보다 잘못을 뉘우치고 남에게 복을 빌어주려고 하다 보니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매일매일 그렇게 꿈꾸고 다짐을 하는 사이에 진공 같았던 물속의 시간도 흘러가게 느껴졌다. 일년이 하루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십 년이 일년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때로는 백년이 하루인 것 같을 때도 있었다. 시간을 계산하려고 하는 내게 바위 할아버지는, 계산하지 말아라, 이래도 저래도 아무 상관이 없는 그때가 되면 네 입으로 여의주가 나올 것이다. 여의주가 천년이 흘렀음을 답해 줄 터이니 아무 근심도 염려도 말고 온통 수양에 집중하여라. 어느 순간 네 몸에서 여의주가 나오면 그때 용이 된 것 아니겠느냐, 하고 기운을 북돋워주었다.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용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항상 최고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존재이니 시간에는 예민하지 말아야 했다. 그래야 용이었다.
숨을 쉬고 있어도 쉰 것 같지 않고, 어떤 자세를 취해도 몸이 힘들지 않은 시점이 내게도 찾아왔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조차 들어가지 않고,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냥 이대로가 참 좋다, 는 느낌에 머물게 된 어느 시점이었다. 바위 할아버지도 그분의 주특기인 아무 말 않고 깊은 명상에 푹 잠겨서 나한테 특별한 간섭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희노애락애오욕 같은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서해에서 보낸 어린 날과, 이곳으로 오기까지의 숨 가빴던 소년시절이, 아주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이었다.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다가 내 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거울이 없어서 내 몸 전체는 못 봤지만, 몸통이며 발이며 발톱이며 모두 달라져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내 모습이었다. 이럴 수가! 이곳으로 올 때 다리와 발톱이 나왔을 때보다 더 놀라운 변화가 내 몸에 임했다. 그리고 속에서 뭔가 묵직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입으로 여의주가 올라왔다. 아, 드디어 내가 용이 된 것이구나. 나는 너무도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여의주를 물었기 때문에 이제 경거망동하면 안 됐다. 용으로서의 품격에 맞게 그걸 물고 점잖게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기쁜 나머지 점잖게 있을 수 없어 몸을 살짝살짝 흔들어보고 있는데, 바위 할아버지가 축하한다는 인사를 했다.
검룡아, 축하한다. 너의 꿈이 내 꿈인데, 드디어 네가 내 꿈을 하나 이루어 주어서 정말 고맙구나.
나는 천년을 하루같이 참을 수 있었던 게 할아버지의 정성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조아려 감사 인사를 했다. 바위 할아버지는 진정한 내 스승이었다. 바위 할아버지는 내가 스승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도 알고 있을 터였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침묵으로 대화를 해왔는가. 바위 할아버지는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아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승천을 하기 위해서는 구멍을 막고 있는 돌들이 다 치워져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을 터였다. 내가 여의주를 이용하면 입구를 막고 있는 돌들 따위야 한순간에 치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때를 기다리려 한다고 마음을 다잡는 것도 알고 있을 터였다.
잠시만 기다려라. 이제 누군가가 와서 이 돌들을 다 치워줄 것이다. 그러면 그때 밖으로 나가 네 꿈을 펼치도록 해라.
할아버지의 미소 속에 그 답이 들어있었다. 정말 그 무언의 말대로 얼마 안 지나서였다. 내가 용이 돼가는 동안, 소 아랫마을에서는 가뭄이 잦았다. 내 잘못이긴 했지만, 소의 물이 제대로 흐르지 않으면서 아랫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도대체 무슨 문제일까? 소를 메워버리고 한참 동안은 아무 일 없는 듯했지만, 소를 메워버린 남자들의 손자들, 그 손자들의 손자들이 대대로 내려가면서 고통을 겪게 된 것이다. 나중에서야 그들은 어른들이 아주 오래전에 소를 메워버렸다는 사실을 알아내서는 내가 머물고 있는 소로 찾아왔다. 그들은 돌들을 걷어내면서, 아주 오래전 내가 이곳에 들어올 때 생긴 와폭과 발톱 자국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내가 용이 되어 마을에 좋은 일을 해주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을 치웠다. 오랜 세월, 소가 있는지조차 모르던 이들은 내 몸을 감싸고 있던 물들이 솟구쳐 오르자 감탄을 했다. 혹자는 전설을 듣고 내가 용이 안 되고 죽었을 거라고 말하면서 속상해 했다. 나는 그들의 말에 미안해 하고 한편으로 고마워 했다. 그들은 왕년에 내가 소를 많이 잡아먹어서 소의 물을 돌로 메꾸어놓았다는 말을 자꾸 해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그게 사실인 것을. 내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준설 작업을 한 이들은 소 앞에다가 정자도 지었다. 그리고 소의 이름을 검룡소라고 지었다. 그러고는 내가 이곳에 오던 강물과 냇물의 길을 잘 파악해 이곳이 남한강의 발원지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다.
이제 더 이상 소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바위 할아버지와 작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할아버지는, 용이 아니던 너를 용을 만들어준 이곳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다. 나는 잘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도 다 자고, 짐승들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그 시간. 내가 여기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딱 그 시간이 됐다. 나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뜻으로, 처음 이곳으로 들어올 때처럼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게 커진 앞발로 바위를 들추고 소에서 몸을 빼내었다. 시원한 바람이 몸에 닿는 순간, 내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비늘이 벗겨지고 몸에 힘이 붙었다. 하늘이 열리면서 내 몸이 솟구쳐 올랐다. 오래된 내 꿈이 드디어 이루어져, 이 큰 몸뚱아리를 지니고도 아주 가볍게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높이 올라간 상태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 몸을 만들어준, 나를 용이 되게 이끌어준 그 맑은 물들이 소 바깥으로 솟아올라 물줄기를 이루면서 상사미, 하사미를 거쳐 정선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아주 높은 하늘에서 그 물길을 내려다보았다. 아주 먼 옛날 내가 용이 되기 위해 한강으로 접어들어 태백까지 거슬러 올라간 물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저렇게 생긴 물길을 내가 올라왔었구나. 멀찌감치 태백산도 내려다보았는데 하늘에서 보니 그리 높지 않았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하고 읊은 선비의 말이 맞았다. 아주 까마득한 옛날, 욕심덩어리 검룡이가 금대봉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짠하고 뭉클했다. 하늘로 올라와서 태백 땅을 내려다보며 나는 소 안에서의 다짐을 다시 되짚어보았다. 마음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나 때문에 해를 입은 사람들의 후예가 살고 있는 태백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잘 모르지만 나는 온 사방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면서 사람들 구경을 한다. 시공의 제약을 안 받으니 못 가는 데가 없다. 사람 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다들 사는 게 어렵다는 말을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한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개천에서 이젠 용이 안 난다고 절망조로 말한다.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요즘엔 안 믿는다는 게 옛날과 지금의 차이다. 그런데 나는 아니라고, 그게 아닌데, 하고 그들의 생각을 고쳐주려고 애쓰고 있다. 개천에서 용 안 난다고 좌절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을 찾아다니느라고 나는 요즘 너무 바쁘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개천에서 용 안 난다고 슬퍼하나. 힘이 든 건 알겠지만, 조금만 더 애를 쓰면 안 될 게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이 방법이 아니면 딴 방법을 생각해내면 되는데.
그리고 잘못됐으면 바로 고치고 또 나아가면 되는데, 그렇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금방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데, 방법을 안 바꾸고 생각을 안 바꾸고 한탄을 하는 모습을 보면 속상하다. 스스로 찾아내고 시간만 잘 투자하면 되는 것인데 말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중요한 건 자신을 잘 보는 것, 잘 인내하고 생각을 유연하게 바꾸는 것이다. 이 점에서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인내를 검사하는, 검사할 檢 자를 쓰는 검룡檢龍이로 살고 있다. 사람들에게 한 가지 힌트를 주고 싶다. 태백 검룡소에 한번 와서 내가 용이 된 이야기를 들으면, 몇 년 몇 십 년을 참는 것은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를 듣는 순간 참을 용기가 생겨서 저마다 멋진 용이 되고 싶은 꿈이 막 생긴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전 태백문화원장인 김강산 선생의 구술과 그분의 저서 『태백시지명지』, 김부래 선생의 구술을 참고하여 재구성했습니다.
스토리텔링 작품
*손윤권